로힝야 난민촌의 전경과 공터에서 축구하는 사람들
REFUGEE STORIES · PART ISECTOR 16 · 2018—PRESENT

DOCUMENTARY / LONG-TERM PROJECT

Rohingya
Refu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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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봅니다.

로힝야족 난민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이어지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뒤에도 계속되는 공동체의 시간과 사람들의 존엄을 바라봅니다.

로힝야족에 대하여

식민지 시대부터 무국적 상태와 반복된 강제이주에 이르기까지, 로힝야족의 오늘을 만든 역사적 배경입니다.

1885—1920s

1885년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면서, 대규모 농지를 경작할 노동력으로 영국령 인도 지역의 무슬림들을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불교도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에 문화적·종교적 긴장이 깊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계 무슬림의 이주가 늘고, 일부가 가난한 토착민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면서 경제적 반감도 커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20년대 이후 토착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며 불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으로 번졌다.

1948—1962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로힝야족은 자치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 윈 정권은 ‘버마식 사회주의’를 앞세워 소수민족의 자치권을 전면 거부하고, 버마족과 불교도 중심의 정책을 펼쳤다. 학교에서는 로힝야어 수업이 금지되었고, 주요 거주지인 아라칸주의 명칭도 버마어인 라카인주로 바뀌었다.

1960s—1992

미얀마 군부정권은 1960년대부터 로힝야족에게 불교 개종을 강요하고, 토지 몰수와 거주지 제한, 강제노동 등의 탄압을 가했다. 1978년에는 무슬림 반군 토벌을 명분으로 군사작전을 벌여 로힝야족을 대규모로 검거했다. 이를 피해 약 20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으나 1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미얀마로 강제 송환되었다. 1982년 군부정권은 1823년 이전부터 해당 지역에 거주했음을 입증한 소수민족에게만 국적을 부여하도록 시민권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로힝야족은 시민권을 박탈당한 무국적자가 되었고, 결혼과 출산, 거주지 이동 등 일상의 기본적인 권리까지 엄격하게 제한받게 되었다. 1991년부터 1992년 사이에도 약 25만 명이 박해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2012—2014

2012년 로힝야족과 불교도 사이의 분쟁에서 촉발된 유혈사태로 라카인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 약 2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약 14만 명이 피난하며 미얀마를 떠났다. 이후 유엔은 로힝야족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2014년 미얀마 정부는 국적 부여 방안으로 ‘라카인 행동계획’을 발표했지만, 1948년 이전부터 조상이 미얀마에 거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스스로를 로힝야족이 아닌 ‘벵갈리’로 등록할 것을 전제로 삼아 실효성이 없었다.

2016

2016년 10월 라카인주의 국경초소 습격 사건이 발생하자 로힝야족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배후로 지목되었다. 이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된 군사작전 과정에서 로힝야족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인종청소라고 비판했다.

ARTIST'S NOTE

작가의 글

SUNNY · 2018—PRESENT · SECTOR 16

나는 2018년 7월부터 현재까지 6~7개월 간격으로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하고 있다. 섹터 16을 거점으로 삼아 로힝야족의 삶을 기록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총 8년의 시간을 전제로 한다. 난민촌에서 이어지는 사람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힘겹게 난민으로 살아가는 로힝야족의 현실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사람들이 인도주의적 연대에 동참하기를 호소한다.

로힝야족은 종교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오랜 역사 속 갈등과 선택이 중첩되며 미얀마에서 탄압과 박해를 받아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왜 같은 인간을 미워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의문을 품고 고민해 왔다.

내가 도달한 생각은 종교, 인종, 민족이라는 구분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경선이 없다면 난민이 존재했을까. 우리는 과연 그들을 난민이라 불렀을까.

나는 사진을 통해 이 모순적인 세계를 드러내고 싶다. 국경선과 종교, 인종, 민족의 구분이 차별과 폭력의 근거가 될 때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질문하고, 그 경계를 넘어 인류가 하나 되는 방향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로힝야족에 주목한 이유다.